깡통진리

성경의 예언을 따라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께서 세우신 참 진리의 교회!!!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세우신 교회는 오직 하나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오직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 20:28)이며, 그 교회의 명칭은 ‘하나님의 교회’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고전 1:1~2, 갈 1:13, 고전 11:23).

 

전 세계 175개국 7,500여 하나님의 교회의 역사는 안상홍님에 의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안상홍님에 의해 다시 시작된 하나님의교회의 역사

 

 

 

 

 

 

하나님의 교회 역사는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 때에 예수께서 ··· 요한에게 세례(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마가복음 1:1~10)

 

당시 이스라엘은 유대교를 믿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기독교는 신흥종교였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이단으로 치부하며 배척했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만 없으면 그리스도교는 몰락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형을 하루 앞둔 날 열두 제자를 불러 새 언약의 법을 세워주셨습니다.

최후의 만찬을 하신 날로 알려진 ‘유월절’입니다.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 잔(포도주)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7~20)

 

유월절 다음 날, 예수님께서는 로마와 유대인들의 결탁에 의해 십자가형을 받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죽었으니 당연히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사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열정으로 불타게 했고, 유럽과 아시아 각지로 흩어져 복음을 가속화하는 불씨가 됐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복음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https://youtu.be/Evzu43r0oCE

 



*로마의 박해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수중에 있었습니다. 로마는 태양신을 섬기던 다신교 국가로, 최고의 권위가 황제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국가에 충성했지만 한 가지, 신앙을 지키는 데 있어서는 로마 황제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국가에 충성하지 못한 자들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고, 결국 로마의 황제들은 기독교 탄압정책을 펼쳐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했습니다. 초대교회는 대체로 가정 교회를 유지하며 그들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렇다고 교회 이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보내며 교회 명칭을 언급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고린도전서 1:2)

 

로마의 탄압을 피해 여러 가정을 전전하며 예배를 드렸던 초대 기독교, 그 이름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즉, 기독교의 역사가 곧 하나님의 교회 역사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로마의 눈을 피해 믿음을 지켰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 대한 로마의 탄압은 갈수록 거세졌습니다.

 

폭군으로 유명한 네로 황제(재위 기간 54~68년)는 무고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학살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해가 지면 등불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재위 기간 284~305년) 황제 때에는 칙령을 반포해 기독교인들의 예배소를 헐고, 성경을 불태우며 기독교인들을 옥에 가두었다. 이 시기 기독교인들은 채찍질을 당한 뒤 피에 굶주린 맹수의 밥으로 던져지거나 화형을 당하고 사지가 찢기는 등 끔찍하고 야만적으로 죽임을 당했다. 시신은 방치되었다가 불에 태워지거나 강에 던져졌다. 이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로마 제국은 정부의 위력으로 기독교를 박멸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박해를 피해 카타콤에까지 숨어 들어가 예배를 드리며 믿음을 지켰다.

 

 


*로마의 기독교 공인


이후, 로마가 내놓은 종교정책은 ‘종교의 자유’였습니다. 로마는 종교적 관용책을 펼치며 타 종교에 대해 묵인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단지 로마의 정치성향일 뿐이었습니다. 통치 차원에서 로마는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을 베풀었으나 언제든지 필요하면 특정 신앙을 박해하거나 탄압할 수 있었습니다. 그 대상이 바로 기독교였습니다.

갈수록 거세지는 탄압 가운데서도 기독교는 로마제국 전체로 전파됐습니다. 처음에는 평민이나 노예 중심으로 퍼져나갔으나 점차 상류층에서도 하나 둘 기독교를 믿는 무리가 생겨났습니다. 상류층의 입교는 기독교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이 무렵부터 신도들이 모이는 곳에는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3세기 말 무렵에는 전체 로마 인구 중 10%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박해를 견딘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더없는 평화가 찾아온 것입니다.

이와 함께 기독교를 심하게 박해하던 갈레리우스는 311년 임종 직전 기독교를 인정하는 칙령에 서명했습니다. 기독교의 승리였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은 다음 해에 찾아왔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했습니다. “모든 기독교도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 이 짧은 문장은 기독교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비로소 기독교는 347년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이르러 국교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역사는 기독교의 타락을 가져왔습니다.

다시 말해 기독교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교리가 이교도화돼버린 것입니다.

 

 

https://youtu.be/yVYp0_XNDAo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유월절 폐지



이 무렵 교회는 동아시아 교회와 로마교회의 분쟁으로 서서히 파벌이 생겼습니다. 두 지역 교회의 분쟁은 AD 155년 유월절 논쟁으로 촉발됐습니다. 로마교회 지도자인 아니케터스와 동아시아의 서머나교회 감독인 폴리카르푸스(폴리갑)가 서로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각자 유월절을 지키기로 했다.

당시 로마교회는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성력 1월 14일 유월절 저녁에 행하던 성찬식을 부활절에 같이 행했습니다. 이런 로마교회의 새로운 관습은 성경대로 행하던 다른 지역 교회들과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197년 로마교회 감독이었던 빅터가 ‘도미닉의 규칙’이라는 법을 만들어 모든 교회에 유월절 성찬식을 부활절에 행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결국 유월절은 AD 325년에 폐지됐습니다. 이 기간에 로마교회의 교리는 급격하게 변질됐습니다. AD 321년 일요일 휴업령으로 성경의 안식일을 버렸고, AD 354년에 크리스마스를 유입시켰으며, AD 568년에 십자가상을 도입했습니다.

 


*종교암흑기


로마교회의 위상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506년에는 동로마 황제까지 정책적으로 로마교회를 지지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로마교회의 감독이 교회의 우두머리라는 칙령을 반포하는 한편 590년에는 ‘교황’이라는 칭호를 주었습니다. 기독교의 세속화는 결국 종교적 괴물을 만들었습니다.

AD 538년 교황은 적대 세력이었던 아리우스파의 동고트를 정복함으로써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게 됐습니다. 참 진리를 전파하던 하나님의 교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1798년 프랑스 혁명군이 교황 피우스 6세를 발렌스로 유배시킬 때까지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온 세상은 로마 가톨릭이 지배하는 종교 암흑시대로 치달았습니다.

이와 함께 로마가톨릭의 부패는 갈수록 심각해졌습니다. 교황직의 매매와 세속적 권력, 축첩, 간음, 사치, 정적 살해 등의 비리는 특정한 때, 특정 교황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황과 성직자들의 음란한 생활은 속담과 풍자로 민중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교황 레오 3세 때는 죄에 대한 벌을 사면해준다는 조건으로 금전이나 재물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른바 ‘면죄부’가 그것입니다. 800년경에 판매가 시작된 면죄부는 15세기에 발행량이 급격히 늘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산물, 개신교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프로테스탄트의 사상을 만든 사람, 바로 마르틴 루터입니다.

루터는 어느 날 수도사인 존 테첼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동전이 그릇에 떨어져 땡그랑 소리를 내는 순간 영혼은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루터는 테첼의 면죄부 판매에 분개했습니다.

로마교회의 타락을 보며 실망했던 그는 당시 대주교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믿는 자의 전 생애가 회개 과정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라며 반박문을 보내고, 교회의 문에 95개조에 달하는 서한을 내걸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그 후 프랑스의 칼뱅, 스위스의 츠빙글리 등 다양한 종교 개혁가들이 등장했습니다. 

천주교에 뿌리를 두고 있던 이들은 종교개혁과 아울러 천주교에 대항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개신교입니다. 천주교에서 분리되어 발생했다고는 하지만 교리적 측면에서 별반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https://youtu.be/aEt8fyok4bs




*다시 시작 된 하나님의 교회 역사와 안상홍님


하나님의 교회 역사는 1964년 안상홍님에 의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이천 년 전, 예수님께서 세워주시고, 예수님을 따르던 사도들과 성도들이 몸담았던 초대교회, 즉 하나님의 교회가 안상홍님에 의해 복원된 것입니다.

대중들은 천주교나 개신교가 하나님을 믿는 곳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정통 기독교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새 언약 유월절을 세워주시며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리라’ 하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두 번째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그로 말미암아 이천 년 전 사라졌던 하나님의 교회 역사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이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많은 교회들이 생겨나고 사라졌습니다. 교회의 홍수 속에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정통 교회를 만나고 싶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희생당하시기 전날 세워주신 새 언약 유월절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 십자가 운명 이후 AD 325년 폐지되므로 기독교인들의 마음에서 사라졌던 유월절. 그 유월절 진리를 가지고 있는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전하는 하나님의 참 진리와 사랑이 국가와 문화, 언어를 초월한 전 세계 인류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 도시는 물론 히말라야 산맥 해발 4000m에 가까운 네팔 고산마을 세르퉁, 아마존 열대우림 지대인 브라질 타루마, 북극 부근의 알래스카, 남극 가까운 최남단 도시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등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안상홍님에 의해 다시 시작 된 하나님의교회가 세워져 새 언약 진리를 지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