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일이라면 번거롭고 고생스러운 것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엄마의 모성, 그 신비한 힘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요?
이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국내 최초로 동서양 모성 비교 실험이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됐습니다. 고려대학교 심리학 연구팀이 실시한 실험방법은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한 뇌 스캔입니다. 첨단 과학의 힘을 빌려 모성의 실체에 접근해 보기로 한 것입니다.
실험에 참여한 이들은 중학생 자녀를 둔 한국인 엄마 11명, 미국인 엄마 11명으로 총 22명이었습니다. 검사시간은 10분. 엄마들에게 성격과 감정 등에 대한 형용사 150개가 제시됐습니다. 제시된 표현들이 자신과 일치한다고 생각되는 단어가 있으면 버튼을 누르도록 했습니다. 자녀에 관한 단어 역시 엄마가 생각하기에 내 아이와 일치하는 것이라고 판단되면 버튼을 누르도록 했습니다. 타인에 대한 판단을 할 때도 동일한 방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과연 자신을 판단할 때와 타인을 판단할 때, 엄마의 뇌는 어떻게 다를까요? 인간의 뇌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를 판단할 때는 ‘내측전전두엽’이 활성화됩니다. 반대로 타인에 대한 정보를 판단할 때는 ‘등측전전두엽’이 활성화됩니다.
모성 비교 실험이진행되는 동안 엄마의 뇌에서 활성화되는 뇌 영역은 뇌 스캔을 통해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먼저 엄마들이 자신에 관한 단어를 판단할 때는 자기 정보 판단 영역인 ‘내측전전두엽’이 활성화됐습니다. 반면 타인을 판단할 때는 ‘등측전전두엽’이 활성화됐습니다.
그렇다면 엄마의 뇌는 자신도 타인도 아닌 자녀를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을까요? 놀랍게도 엄마가 자녀를 판단할 때 자기 판단 뇌의 영역인 ‘내측전전두엽’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실험에 참가한 한국인과 미국인 엄마 ‘모두’에게 동일하게 나타났습니다.
자신과 아이를 동일하다고 인식하는 ‘동일시현상’이 엄마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제 삶입니다.” 실험에 참가했던 미국인 엄마 스테이시 게쉬의 말입니다. 대다수 엄마들이 “내 딸 혹은 내 아들은 나의 삶 자체”라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자녀를 또 다른 자기 자신, 분신으로서 뇌리에 깊이 각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하늘자녀들)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
(이사야 49:15~16)
엄마의 뇌는 자녀를 평생 동안 품고 헌신하는 존재로 프로그래밍되었습니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모성의 신비, 그 베일을 벗겨보니 하늘어머니의 품속에 자녀인 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어머니하나님을 믿음으로 증거하는 이유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통해서입니다.또한 하나님께서 뜻을 두고 창조하신 만물속에서 곳곳에 고스란히 베어있는 어머니의 숨결을 통해서 어머니하나님을 깨달아갑니다. 하늘어머니께서는 창세전부터 우리와 함께하였습니다. 자녀를 사랑하시사 하늘의 생명을 부여하기 위해 친히 이 땅가운데 오시어 산고의 고통을 홀로 감당하시는어머니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모두가 어머니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아담을 만드시고 영혼을 그 속에 넣자 비로소 아담은 생명을 가진 존재로 탄생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7)
이렇게 창조된 아담은 그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하와와 함께 에덴동산에 거했습니다. 후에 아담은 930세라는 나이로 죽기까지 가인과 아벨 등 많은 자녀를 낳았다고 구약성경 창세기는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담의 일생입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는 이러한 아담을 두고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린도전서 15:45)
창조된 아담은 분명 한 사람인데 성경에서는 첫 사람 아담이 있고 마지막 아담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 가운데 두 아담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며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하나님께서 흙으로 육체를 만들어 그 속에 영혼을 불어 넣어 생명을 가진 존재로 탄생시킨 아담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아담은 누구일까요? 마지막 아담에 대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힌트는 ‘살려주는 영’이라는 점입니다. 이로 보건대 마지막 아담은 죽어가는 인류를 살려주기 위해 오시는 구원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담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로마서 5:14)
아담을 오실 자에 대한 표상이라고 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오실 자’는 성경 맨 마지막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
‘오실 자’는 장차 오실 예수님 즉 재림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로마서에서 ‘오실 자’를 표상하는 아담은 바로 재림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의 마지막 아담 또한 마지막에 등장하시는 재림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살려주는 영’으로 오시는 마지막 아담인 재림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인류를 살려주실까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54)
마지막 아담인 재림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신다고 하셨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살과 피는 어떻게 먹고 마실 수 있을까요?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태복음 26:17~19)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6~28)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의 떡을 당신의 살로, 유월절의 포도주를 당신의 피로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살려주는 영’인 마지막 아담이 인류에게 생명을 주는 방법입니다.
마지막 아담의 예언 그대로 유월절을 가지고 오신 재림 예수님이 바로 안상홍님이십니다.
안상홍님께서는 성경의 예언그대로 우리 자녀들을 찾아 구원주기 위해 이 땅가운데 두 번째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재림그리스도이십니다.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을 성경을 통해 자세히 살피시어 모두가 구원에 이르는 자녀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