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이 되면 많은 교회에서는 색칠을 하거나 갖가지 무늬를 그려 넣은 ‘삶은 계란’을 먹는다. 왜 그들은 부활절에 삶은 계란을 먹는 것일까. 어떤 이는 ‘부화’를 이유로 들기도 한다.
하지만 부화와 부활은 전혀 다른 의미다.
차라리 연관성을 짓고 싶다면 날계란을 먹는 편이 설득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절에 무엇을 먹었는지 2천 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그날은 안식일 다음 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지 3일째 되던 날이었다. 두 제자가 엠마오라는 시골마을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그들은 예수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날 새벽에 동료들로부터 예수님의 시체가 사라졌다는 소식과 함께 예수님의 부활을 알린천사를 보았다는 증언을 들었으면서도 자신들 바로 곁에 계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들의 눈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답답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누가복음 24:30~3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축사하신 ‘떡’을 먹이셨고 제자들은 그제야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에 제자들이 먹은 건 삶은 계란이 아니라 ‘떡’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도들도 무교절 후에 오는 부활절을 지키며 떡을 먹었다. 참고로, 하나님의 절기 중 부활절은 유월절, 무교절 다음에 오는 절기다. 정확히 무교절 후에 오는 안식 후 첫날, 즉 무교절 후 첫 일요일이다.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사도행전 20:6~7)
이렇듯 성경에서 부활절을 지킨 흔적의 전반을 살펴보면 계란이 아니라 떡을 먹었다는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떡은 그리스도를 알아보게 하고 깨닫게 하는, 영혼의 눈을 열어주는 떡이다.
*부활절에 삶은 계란을 먹는 이유
그런데 기성 교회에서는 무슨 연유로 부활절에 삶은 계란을 먹게 된 것일까.
이는 영어 표현인 ‘이스터(easter)’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대 바벨론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스터 여신에 대한 신화가 있다. 고대 바벨론 사람들은 하늘로부터 유프라테스강에 큰 계란이 떨어졌는데, 이스터 여신이 이 계란에서 부화했다고 믿었다.
이스터 여신은 각 나라마다 다양한 이름과 형태로 숭상됐다. 튜턴족들은 에오스트레(Eostre)라고 불렀고, 페니키아에서는 아스타르테(Astarte), 로마에서는 비너스(Venus), 그리스에서는 아프로디테(Aphrodite), 이집트에서는 이시스(Isis), 이스라엘에서는 아스다롯(Ashtoreths) 등으로 불렸다. 성경에는 옛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여신인 아스다롯을 섬겼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 회개했던 역사가 기록돼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 애굽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사사기 2:11~1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사무엘상 7:3~4)
그런데 이 같은 역사가 또다시 되풀이되고 있다. 이교도의 풍습이 교회 안에 들어온 것이다. 맨 처음으로 부활절에 색칠한 계란을 사용한 건 메소포타미아 지역이었다.
그리고 삶은 계란을 주고받는 풍습은 17세기 수도원에서 시작됐다. 2천 년 전이 아니다.
부활절 계란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닌, 성경에는 없는 ‘다른 복음’이다.
삶은 계란은 냉면을 먹을 때나 장조림을 할 때나 필요하다.
부활절에 계란을 먹는 사람은 부디 이 말씀을 떠올리면 좋겠다.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1:8~9)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데살로니가후서 1:7~8)
혹 어떤 이들은 무엇을 먹는 것이 뭐가 중하다고 하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은은 구원이 아닌 오히려 저주를 받게 됨을 말이죠.
작은 일에도 순종치 않는자가 어찌 큰일에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생각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본보여 주신 생명의 언약들을 어기고 없애고 다른복음들을 교회에 들인다면 어느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곧 부활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자세히 살펴 부활절에 삶은 계란을 먹는 성경에도 없는 불법들을 지키는 어리석은 자녀들이 없어야만 하겠습니다....
구약시대에도 각 시대를 따라 유월절을 지킨 자와 지키지 않는 자의 멸망 받은 역사는 확연히 차이가 났습니다.
다시 말해..... 유월절을 지키지 않으면 죄사함도 영생의 축복도 받을 수가 없으며, 재앙에서도 구원함을 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교회는 성경의 예언따라 이 땅가운데 두번째 다시 오신 안상홍님께서 다시 찾아주신 초대교회 참진리인 새언약유월절을 소중히 지켜 행하고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교회가 소중히 여기는 유월절에 대해 유래부터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월절의 유래
하나님께서는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주기 위해 모세를 택하셨어요.
모세의 나이 80세 때.... 모세는 바로왕에게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달라 청하였어요.
그러나 바로는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여 더욱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어요.
하나님께서는 크게 진노하시어 애굽에 열가지 재앙을 내렸어요.
바로는 아홉가지 재앙을 겪었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지 않았어요.
하나님께서는 열 번째 재앙으로 애굽의 모든 장자들과 생축의 초태생을 멸하는 재앙을 내리겠다고 하였어요.
열 번째 재앙의 시행일은 성력 1월 14일이였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자들이 죽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집의 문설주와 인방에 1년 된 양의 피를 바르도록 명령하셨어요.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이 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그 양을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 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 지니라... 출12:1~14
성력 1월 14일 저녁....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유월절을 따라 장자 재앙을 넘겼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였던 애굽은 모든 장자가 죽었으며 바로의 장자까지도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여기 저기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제야 바로는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애굽에서 떠나라 명하였습니다.
성력 1월 14일 저녁에 지켰던 유월절은....430년간 종살이를 해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포로생활에서 해방시켜 준 날이 된 것입니다.
유월절의 유래를 살펴보니 새언약유월절이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를 더욱 깊게 깨달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늘에서 쫓겨 내려와 이 땅가운데 매여 종살이하는 자녀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영혼의 자유일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영혼의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요? 새언약유월절을 더욱 자세히 살펴보면 그 답을 얻게 되실 꺼에요.
다음시간에는 유월절 속에 담긴 하나님의 영생의 약속을 통해 영혼의 자유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할께요.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배를 통해 모든 죄를 사함받고 거룩함의 축복을 입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는 설교자의 유창한 강론을 듣기 위해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깨달아야 할 영적인 의미가 그 속에 분명히 담겨 있습니다. 모든 설교자들은 성도와 하나님과의 만남을 중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해드리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하나님께 올리는 예배의 중요성과 의미를 성경 말씀을 통해 되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약의 제사율법
“그는 또 그 속건제를 여호와께 가져올지니 곧 너의 지정한 가치대로 떼 중 흠 없는 수양을 속건 제물을 위하여 제사장에게로 끌어올 것이요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으리라” 레 6장 6~7절
구약의 제사는 죄를 용서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거나 소원을 드릴 때 올리던 제사였던 화목제와 죄와 허물을 용서받았던 속건제 제사를 통해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써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만약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가 없었다면 당시 사람들은 자기가 지은 죄를 하나님께 용서받을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예배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요 지상과 천상을 이어주는 사다리와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허락지 않으셨다면 오늘날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앞에 지은 크나큰 죄를 무엇으로 다 속량할 수 있겠습니까? 또 무엇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올릴 수 있겠습니까?
예배를 통해서 지난날의 우리 죄와 허물을 온전히 사해주신 하나님께 진정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